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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일 (월)
마태복음 19:13-22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제자들은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주님은 아이들을 안수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능력 있는 자, 가진 자의 것이 아니라, 의지하고 맡기는 자의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 계산하지 않는 신뢰가 천국의 문을 엽니다. ⭕️이어 한 청년이 달려와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계명을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흠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주님은 그의 재산을 문제 삼으신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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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주일)
마태복음 19:1-12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혼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묻습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님은 대답하시기 전에, 먼저 창조의 자리로 우리를 안내하십니다. “창조주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예수님은 율법의 허용 조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처음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남녀가 짝을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설명하십니다. ⭕️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율법을 이용하여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의 악의를 바로 잡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존재였고, 이혼은 종종 약자를 더 깊은 상처로 몰아넣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무책임의 명분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처럼 정죄하기보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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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토)
마태복음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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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마태복음 18:10-20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항상 아버지의 얼굴을 뵙고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자를 얼마나 귀히 여기시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눈에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어 잃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을 산에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한 영혼을 향한 집요한 사랑, 포기하지 않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을 보십니다. ⭕️또한 형제가 죄를 범하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가르치십니다. 먼저 개인적으로 권면하고, 듣지 않으면 두세 증인을 데리고 가며,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라고 하십니다.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공동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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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마태복음 18:1-9 ⭕️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묻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그들의 관심은 여전히 서열과 권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천국의 크기는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에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의지하고, 배우려 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키입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작은 자를 대하는 태도가 곧 주님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반대로,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것은 매우 엄중한 일이라 경고하십니다. 신앙은 개인적인 열심을 넘어, 다른 이의 믿음을 세워 주는 책임을 동반합니다. ⭕️이어 예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하시며, 손이나 발, 눈이 범죄하게 하거든 과감히 끊어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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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마태복음 17:14-27 ⭕️산 아래로 내려오신 예수님께 한 아버지가 무릎 꿇고 간구합니다. 귀신 들려 고통받는 아들을 고쳐 달라는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미 시도했지만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탄식하시며 귀신을 꾸짖으시니, 아이가 곧 나았습니다. 제자들이 조용히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고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은 심히 근심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영광을 기대했지만, 주님의 길은 십자가를 통과하는 길이었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경험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고난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자라가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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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
마태복음 17:1-13 ⭕️엿새 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십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어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하늘의 영광이 잠시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합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 예수님과 함께 선 것은, 그분이 약속의 성취자이심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이 놀라운 광경 속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합니다. 영광의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빛난 구름이 덮이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은 두려워 엎드립니다. 예수님은 다가와 손을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눈을 들어 보니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결국 신앙의 중심에는 사람도, 체험도 아닌 예수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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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마태복음 16:13-28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 대답이 오갑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곧 더 깊어집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시몬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놀랍게도 이 신앙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세상의 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처음으로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밝히십니다. 제자들이 기대하는 메시아상은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십자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말립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엄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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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마태복음 16:1-12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함께 와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합니다.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을 시험하는 일에는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책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겉으로 보이는 현상은 잘 읽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행하시는지는 보지 못하는 영적 둔감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시고 그들을 떠나십니다. 이미 충분한 증거가 있었지만, "믿지 않기로 작정한 마음"은 어떤 기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표적은 믿음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 믿음이 있을 때 표적이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은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걱정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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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마태복음 15:29-39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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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마태복음 15:21-28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을 때, 한 가나안 여인이 따라와 외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녀의 딸은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귀찮다는 듯 “보내소서”라고 말합니다. 도움을 구하는 절박한 외침이 침묵과 거절을 마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시고, 이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냉정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여인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면서도, 주님의 은혜의 너비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그것을 붙잡습니다. 자존심보다 믿음을 택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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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91 min read
2월 19일
마태복음 15:1-20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고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습니까?” 그들의 관심은 손의 깨끗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질문을 되돌리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사람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올라설 때, 신앙은 형식만 남고 본질은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난 상태를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무리를 불러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더러움은 외부에서 묻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 살인, 간음, 거짓 증언, 비방이 모두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은 겉을 단정히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마음의 뿌리를 다루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제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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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81 min read
2월18일
마태복음 14:22-36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워 보내시고,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십니다. 기적의 자리 뒤에는 반드시 기도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가고, 바다는 거세게 흔들립니다. 제자들은 순종하여 배를 탔지만, 곧바로 풍랑을 만났습니다. 순종의 길이라고 해서 항상 평탄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주님의 뜻 안에서도 거센 바람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경 (새벽 3~6시)쯤 되었을 때, 예수님은 바다 위로 걸어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을 보고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은 주님의 임재마저 오해하게 만듭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폭풍을 잠재우기 전에 먼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십니다. 믿음은 환경이 고요해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풍랑 한가운데서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거든 나를 명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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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71 min read
2월17일
마태복음 14:13-21 ⭕️세례 요한의 죽음을 들으신 예수님은 배를 타고 빈 들로 향하십니다. 슬픔 속에서 잠시 홀로 있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가 그 소식을 듣고 걸어서 따라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자신의 슬픔보다, 목자 없는 양 같은 사람들의 아픔을 먼저 품으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언제나 연약한 자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현실적인 제안을 합니다. “무리를 보내어 각자 먹을 것을 사게 하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가진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계산해 보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가져오게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뒤 떼어 나누어 주십니다. 부족함이 기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없음이 아니라, 드려짐을 사용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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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61 min read
2월 16일
마태복음 14:1-12 ⭕️갈릴리 분봉왕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세례 요한을 죽였던 기억 때문에, 예수님을 다시 살아난 요한으로 오해합니다. 죄책감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회개하지 않은 마음은 과거의 그림자에 계속 붙들려 있게 됩니다. 권력의 자리에 있었지만, 헤롯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마태는 여기서 세례 요한의 죽음을 다시 들려줍니다. 요한은 헤롯의 죄를 죄라 말했고, 그로 인해 옥에 갇혔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람들의 눈과 체면, 충동적인 맹세 앞에서 결국 요한을 죽이는 선택을 합니다. 진리를 알고도 지키지 못한 비극입니다. 죄는 한 번의 타협으로 끝나지 않고, 더 큰 어둠으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하고, 그 일을 예수님께 알립니다. 의로운 사람의 죽음은 세상에서 침묵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코 헛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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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51 min read
2월 15일
마태복음 13:44-58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보화와 진주에 비유하십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쁨으로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사고, 값진 진주를 만난 장사도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하나님 나라는 덤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꿀 만큼의 가치를 지닌 나라입니다. 발견하는 순간, 계산이 달라지고 선택이 달라집니다. 믿음은 손해를 보는 결단이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을 얻기 위한 선택입니다. ⭕️이어지는 그물 비유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분별을 말씀하십니다. 바다에 던진 그물에 각종 물고기가 모이지만, 결국 좋은 것과 못된 것이 갈라집니다. 지금은 섞여 있지만, 끝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습니다. 이는 두려움의 메시지가 아니라, 지금의 선택이 영원으로 이어진다는 진지한 초대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시며, 새 것 (복음)과 옛 것 (율법/예언)을 조화롭게 완성하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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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41 min read
2월14일
마태복음 13:31-43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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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32 min read
2월 13일
마태복음 13:18-30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풀어 주십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해 악한 자가 빼앗아 가는 마음이요, 돌밭은 기쁨으로 받지만 뿌리가 없어 환난과 박해가 오면 곧 넘어지는 마음이며. 가시덤불은 말씀이 자라기도 전에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막아버린 경우입니다. 말씀은 들렸지만, 삶의 중심까지 내려가지 못했을 때 열매는 맺히지 못합니다. ⭕️반면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인내로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이는 삼십 배, 어떤 이는 육십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의 크기는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많고 적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각 사람의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낸 그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신앙은 빨리 자라는 경쟁이 아니라, 끝까지 남아 있는 인내의 여정입니다. ⭕️이어지는 가라지 비유에서 예수님은 밭에 좋은 씨를 뿌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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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21 min read
2월 12일
마태복음 13:1-17 ⭕️예수님은 바닷가에서 무리를 향해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같은 씨가 뿌려졌지만,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과 좋은 땅에 떨어지며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씨의 문제가 아니라, 땅의 상태가 열매를 결정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언제나 동일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토양 (질)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묻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허락된 자에게만 주어졌다고 하십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를 안타까워하십니다. 이는 배제의 말씀이 아니라, 굳어진 마음에 대한 진단입니다. 비유는 감추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열어 보이기 위한 말씀이지만, 마음이 닫혀 있으면 오히려 가려집니다. 신앙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복되다 하십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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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마태복음 12:38-50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요구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표적 구함이라고 말씀하시며, 요나의 표적만 주어질 것이라 하십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더 많은 증거를 원했지만, 사실은 이미 충분한 증거 앞에 서 있었습니다. 믿음은 더 많은 표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을 예로 드시며, 회개와 갈망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이방인들조차 요나의 한마디에 회개했고,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 앞에는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 서 계십니다. 문제는 표적과 이적의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완고함이었습니다. 또한 더러운 귀신이 떠난 집이 비어 있으면 더 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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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0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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