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주일)
- creeksid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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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1-12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혼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묻습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님은 대답하시기 전에, 먼저 창조의 자리로 우리를 안내하십니다. “창조주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예수님은 율법의 허용 조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처음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남녀가 짝을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설명하십니다.
⭕️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율법을 이용하여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의 악의를 바로 잡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존재였고, 이혼은 종종 약자를 더 깊은 상처로 몰아넣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무책임의 명분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처럼 정죄하기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고자 강조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을 바로잡으시고, 상처받는 이들을 지키려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모세가 이혼증서를 주라 한 것은 너희 마음이 완악함 때문이라.”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현실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 됨이지만, 인간의 완악함은 때로 고의적으로 관계를 깨뜨립니다. 성경은 결혼의 거룩함을 분명히 말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도 설명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진리를 전하되, 상처 입은 영혼을 품는 것입니다. 헤어짐의 경험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 사랑에서 멀어진 것이 아닙니다. 실패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붙드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 독신, 관계의 상처… 각 사람의 삶의 자리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든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매이지 말고, 오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어제를 묻기 전에, 오늘의 중심을 귀히 여기십니다.
물가로 성도 여러분, 서로의 약속을 지키는 것도 은혜이고, 상처를 딛고 다시 서는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누구도 두 번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 안에서, 정죄가 아니라 회복을 선택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